도입
행동을 예측하는 마케팅에서 경험을 이해하는 마케팅으로
우리는 왜 같은 커피를 마시면서도 어떤 카페는 다시 찾고, 어떤 카페는 기억조차 하지 못할까?
가격이 더 저렴해서일까. 품질이 더 좋아서일까. 위치가 가까워서일까.
전통적인 소비자 행동 이론은 이런 질문에 비교적 명확한 답을 제시해 왔다. 소비자는 정보를 수집하고, 대안을 비교하며, 자신의 효용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선택한다는 것이다. 이후 행동주의와 인지심리학이 발전하면서 소비자는 완전히 합리적인 존재는 아니지만, 다양한 심리적 편향과 정보처리 과정을 거쳐 의사결정을 내리는 존재로 이해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우리는 일상에서 종종 이러한 설명이 충분하지 않음을 경험한다. 어떤 향기는 오래된 기억을 불러오고, 어떤 공간은 설명하기 어려운 편안함을 남기며, 어떤 브랜드는 제품보다 분위기를 먼저 소비하게 만든다.
이러한 경험은 단순히 ‘선택’의 결과가 아니다. 오히려 선택 이전에 이미 세계를 살아가는 방식 속에서 형성되는 경험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현상학은 소비자를 다시 묻기 시작한다.
소비자는 정말 합리적인 존재인가. 아니면 우리는 이미 하나의 세계를 살아가는 몸으로서 소비하고 있는 것일까.
합리적 소비자라는 오래된 전제
현대 마케팅은 오랫동안 경제학의 영향을 받아 발전했다. 초기 마케팅 이론은 교환을 중심으로 시장을 이해했고, 소비자는 자신의 효용을 극대화하려는 합리적 행위자로 가정되었다. 이후 마케팅 관리론(Marketing Management)은 소비자의 욕구를 분석하고 이를 가장 효과적으로 충족시키는 관리기법을 발전시켰다.
그러나 현실의 소비자는 경제학 교과서처럼 행동하지 않았다.
같은 품질의 제품이라도 브랜드에 따라 더 비싼 가격을 기꺼이 지불했고, 필요하지 않은 물건을 충동적으로 구매했으며, 감정과 분위기에 따라 동일한 제품을 전혀 다르게 평가했다.
이러한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마케팅은 심리학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지각(perception), 태도(attitude), 동기(motivation), 학습(learning), 기억(memory) 등의 개념이 소비자 행동 연구의 주 개념이 되었고, 소비자는 정보를 처리하는 심리적 존재로 재구성되었다. 이는 분명 중요한 발전이었다. 소비자는 더 이상 완전히 합리적인 존재가 아니었다. 그러나 여전히 하나의 전제가 남아 있었다.
소비자는 정보를 처리하는 ‘마음’으로 이해되었지만, 여전히 세계를 살아가는 ‘몸’은 충분히 고려되지 않았다.
행동주의와 심리학 모델의 한계
행동주의는 인간 행동을 자극(Stimulus)과 반응(Response)의 관계로 설명했다. 이후 인지심리학은 내부의 정보처리 과정을 추가하면서 더욱 정교한 소비자 모델을 만들었다.
하지만 이 모델들은 공통적인 한계를 가진다.
소비는 여전히 관찰 가능한 행동이나 측정 가능한 심리 변수로 환원된다.
• 왜 어떤 브랜드는 설명할 수 없는 친숙함을 주는가?
• 왜 같은 향수가 사람마다 전혀 다른 의미를 갖는가?
• 왜 우리는 제품보다 공간의 분위기를 먼저 기억하는가?
이 질문들은 정보처리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Barry Ardley(2011)는 이러한 전통적 마케팅 이론을 “거대한 이론(grand theory)”이라고 비판한다. Ardley는 기존 이론이 실제 마케팅 실천 속 인간의 감정, 직관, 맥락, 의미 형성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할뿐더러, 관리자의 실제 판단과 소비자의 살아 있는 경험을 지나치게 추상화한다고 지적한다. 다시 말해, 소비자는 계산하는 기계가 아니라 세계를 살아가는 존재이다.
현상학이 묻는 질문
현상학은 소비자의 행동보다 먼저 경험을 본다.
후설은 의식은 언제나 무엇인가를 향한다고 말하며 이를 지향성(Intentionalität)이라고 불렀다. 소비자는 단순히 상품을 인식하는 존재가 아니라, 항상 의미를 향해 세계와 관계를 맺는 존재이다.
메를로-퐁티는 지향성을 신체-지향성으로 설명하며, 우리는 먼저 몸으로 세계를 경험한다고 한다.
손으로 제품을 만지고, 공간의 조명을 느끼며, 향기를 맡고, 걸음을 옮기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존재한다.
이후에야 우리는 그것을 언어와 개념으로 해석한다.
따라서 소비는 정보처리의 결과가 아니라 몸을 통해 이루어지는 세계 경험이다.
현상학은 이러한 경험을 살아 있는 경험(Lived Experience)이라고 부른다.
이 경험은 사용자 경험(User Experience)이 아니다. 사용자 경험이 기능과 인터페이스를 중심으로 측정된다면, 살아 있는 경험은 소비자가 세계를 살아가는 전체적인 실존 양식이다.
1989년 Thompson, Locander, Pollio는 소비자 연구에 실존현상학을 도입하며 소비자를 통계적 변수보다 1인칭 경험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소비자 연구는 객관적 행동만이 아니라 소비자가 자신의 세계를 어떻게 경험하는지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현상학은 감정, 감각, 상징, 체화(embodiment), 시간성 등을 함께 고려함으로써 소비자 행동을 보다 풍부하게 설명할 수 있으며, 정량적 모델이 놓치는 인간 경험의 층위를 드러낸다고 평가된다.

이 이미지는 인물의 손이 거친 벽면과 그 위의 얇은 구리선에 닿아 있는 클로즈업 샷입니다. 배경은 어둡고 깊이감이 있는 실내 공간으로, 흐릿한 구조물들이 배치되어 신비로운 느낌을 줍니다. 조명은 손과 벽면의 질감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설정되어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사색적이거나 미스테리한 분위기를 전달합니다. 시각적 대비가 뚜렷하며 질감이 상세하게 표현된 이미지입니다.
브랜드는 머리가 아니라 몸에 먼저 남는다
1990년대 이후에는 브랜드가 하나의 경험을 제공한다는 관점이 등장했다.
브랜드 경험은 흔히들 알듯이 “브랜드를 좋아하게 되는 과정”으로만 볼 수는 없을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브랜드는 소비자의 머릿속에 먼저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몸의 감각을 통과해 들어온다. 우리는 어떤 브랜드를 논리적으로 이해하기 전에, 먼저 그 브랜드가 만들어 놓은 공간의 온도, 빛, 소리, 냄새, 거리감, 움직임의 리듬을 느낀다.
예를 들어 Hollister 매장을 떠올려보자.
그곳은 단순히 옷을 진열한 판매 공간이 아니다. 어두운 조명은 시야를 제한하고, 강한 향기는 공간 전체를 하나의 기분으로 감싼다. 큰 음악은 대화를 어렵게 만들고, 좁은 동선은 소비자의 움직임을 특정한 방식으로 유도한다. 직원과 소비자 사이의 거리감 역시 우연한 것이 아니다. 이 모든 요소는 소비자가 “옷을 본다”기보다 “어떤 분위기 안에 들어간다”고 느끼게 만든다.
이때 소비자는 먼저 판단하지 않는다. “이 브랜드는 젊고 자유로운 이미지를 추구하는군”이라고 분석하기 전에, 몸은 이미 그 공간의 리듬에 적응한다. 눈은 어둠에 익숙해지고, 귀는 음악의 크기에 맞춰지고, 걸음은 좁은 통로에 따라 조절된다. 향기는 의식적으로 해석되기 전에 이미 브랜드의 분위기로 남는다. 브랜드는 설명되기 전에 감각된다.
Stevens와 연구진들(2019)이 말한 Immersive Somascape Experience는 바로 이 내용을 설명한다. 브랜드 경험은 몸 전체가 특정한 장소 안에 놓이고, 그 장소의 감각적 조건에 의해 영향을 받는 경험이다.
여기서 중요한 요소는 네 가지다.
- 먼저는 감각 활성화다. 조명, 향기, 음악, 촉감은 소비자의 감각을 깨운다.
- 두번째는 브랜드 물질성이다. 매장의 벽, 옷의 질감, 조명 기구, 진열대 같은 물질적 요소들이 브랜드의 의미를 만든다.
- 셋째, 신체적 관계성이다. 소비자는 혼자 브랜드를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직원, 다른 소비자, 공간의 밀도와 함께 경험한다.
- 넷째, 방향감각의 흔들림이다. 어둡고 낯선 공간은 소비자의 익숙한 움직임을 방해하면서, 브랜드가 설계한 새로운 감각 질서 안으로 소비자를 끌어들인다.
그래서 브랜드 경험은 기억보다 깊은 곳에 남는다. 우리는 어떤 브랜드의 슬로건은 잊어버리지만, 그 매장에 들어갔을 때의 냄새나 조명, 몸의 긴장감은 오래 기억한다. 그것은 머릿속 정보가 아니라 몸의 습관으로 남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 Ardley, B. (2011). Marketing theory and critical phenomenology: Exploring the human side of management practice. Marketing Intelligence & Planning, 29(7), 628–642.
- Baker, M. J., & Saren, M. (Eds.). (2010). Marketing Theory: A Student Text (2nd ed.). Sage.
- Merleau-Ponty, M. (2012). Phenomenology of Perception (D. A. Landes, Trans.). Routledge. (Original work published 1945)
- Stevens, L., Maclaran, P., & Brown, S. (2019). An embodied approach to consumer experiences: The Hollister brandscape. European Journal of Marketing, 53(4), 806–828.
- Thompson, C. J., Locander, W. B., & Pollio, H. R. (1989). Putting consumer experience back into consumer research: The philosophy and method of existential-phenomenology. Journal of Consumer Research, 16(2), 133–146.
- Vargo, S. L., & Lusch, R. F. (2004). Evolving to a new dominant logic for marketing. Journal of Marketing, 68(1), 1–17.
- Islam, M. S. (2026). Why we buy, how we feel: Applying phenomenology to consumer research. Journal of Trade Science, 14(1), 61–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