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입
우리는 회의실에서 이런 말을 자주 듣는다.
“감이 아니라 데이터로 말합시다.”
“고객을 세분화하고, 포지셔닝을 정하고, 4P를 설계해야 합니다.”
“성과는 측정 가능해야 합니다.”
이 말들은 너무 익숙해서 거의 의심되지 않는다. 그러나 잠시 멈춰 생각해보면 이상한 점이 있다. 마케팅은 사람의 욕망, 기억, 불안, 기대, 허영, 습관을 다루는 일이다. 그런데 왜 이토록 숫자와 모델, 분석표와 관리 체계의 언어를 빌리려 했을까?
마케팅은 왜 스스로를 ‘감각의 기술’이나 ‘설득의 수사학’이 아니라 ‘과학’으로 설명하려 했을까?
마케팅 관리론
20세기 중반 이후 마케팅 이론은 점점 관리 가능한 지식의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시장은 조사될 수 있고, 소비자는 분석될 수 있으며, 기업 활동은 계획되고 통제될 수 있다는 믿음이 강해졌다. 이 흐름의 중심에는 이른바 marketing management school, 곧 마케팅 관리론 학파가 있었다.
마케팅 관리론은 마케팅을 하나의 철학적 사유라기보다 기업 안에서 수행되는 관리 기능으로 정리했다. 시장을 분석하고, 목표를 설정하고, 전략을 수립하고, 실행 후 성과를 통제하는 과정. 이 틀 안에서 마케팅은 더 이상 막연한 판매 감각이 아니었다. 그것은 분석, 계획, 실행, 통제의 절차로 간주되었다.
이때 4P는 결정적인 프레임이 되었다. 제품, 가격, 유통, 촉진. 이 네 가지 항목은 복잡한 시장 현실을 마케팅 관리자가 조작할 수 있는 변수로 바꾸어놓았다. 소비자의 욕망은 제품 전략으로, 지불 의사는 가격 전략으로, 접근 가능성은 유통 전략으로, 설득은 촉진 전략으로 재배치되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4P가 한갓 실무 도구가 아니라는 점이다. 4P는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이다. 시장은 변수들의 조합이고, 소비자는 반응하는 대상이며, 마케터는 그 변수들을 조정해 원하는 결과를 만들어내는 관리자라는 관점. 이 관점은 마케팅에 과학적 외양을 부여했다.

이 이미지는 마케팅 전략의 변화를 나타내는 개념적인 시각 자료입니다. 전면에는 ‘PRODUCT’, ‘PRICE’, ‘PLACE’, ‘PROMOTION’이라는 텍스트가 새겨진 흰색 정육면체가 균열과 함께 파손되어 있습니다. 파손된 틈 사이로는 붉은색과 황토색의 물감을 덧바른 듯한 거친 질감의 추상적인 덩어리가 밖으로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전체적인 배경은 어두운 푸른색의 격자무늬와 함께 디지털 네트워크를 연상시키는 복잡한 파란색 선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고전적인 마케팅 프레임워크가 현대의 복잡한 디지털 환경 속에서 해체되거나 혁신되는 과정을 은유하고 있습니다.
실증주의는 이러한 흐름에 철학적 정당성을 제공했다. 실증주의적 태도는 관찰 가능한 사실, 측정 가능한 자료, 검증 가능한 인과관계를 중시한다. 마케팅이 과학이 되려면 소비자의 행동도 일정한 규칙성을 가져야 한다. 광고 노출이 태도 변화로 이어지고, 가격 변화가 수요 변화로 이어지며, 유통 접근성이 구매 가능성을 높인다는 식의 관계가 발견되어야 한다.
물론 이것은 매우 매혹적인 약속이었다. 시장이 예측 가능하다면 기업은 불확실성을 줄일 수 있다. 소비자의 선택이 설명 가능하다면 실패의 가능성도 관리될 수 있다. 마케팅 과학의 꿈은 결국 통제의 꿈이었다. 인간의 변덕스러운 욕망을 데이터와 모델 속에 넣어두고, 시장의 우연성을 관리 가능한 질서로 바꾸려는 꿈.
그러나 바로 여기서 철학적 문제가 발생한다. 인간은 정말 그렇게 예측 가능한 존재인가? 소비자의 선택은 언제나 가격, 기능, 편익, 노출 빈도의 함수로 설명될 수 있는가? 어떤 브랜드를 좋아하게 되는 일, 어떤 광고를 오래 기억하는 일, 어떤 제품을 자신의 일부처럼 느끼는 일은 단순한 반응 변수로 환원될 수 있는가?
현상학은 이 지점에서 다른 질문을 던진다. 인간은 먼저 계산하고 선택하는 존재가 아니라, 세계 속에서 느끼고 지각하고 의미를 구성하는 존재다. 소비자는 제품 앞에서 단순히 정보를 처리하지 않는다. 그는 분위기를 느끼고, 색과 질감을 받아들이고, 과거의 기억을 불러오며, 타인의 시선을 상상한다. 구매는 하나의 판단이기 전에 하나의 경험이다.
마케팅 관리론은 이 경험을 관리 가능한 변수로 보고자 했다. 그것이 이론의 강점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한계이기도 했다. 경험이 관리 가능한 변수로 환원되는 순간 사라지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숫자로 표현된 선호도는 왜 그 사람이 그 브랜드를 자기 삶의 일부로 느끼는지 말해주지 않는다. 세분화된 고객군은 그 사람이 어떤 불안 속에서 소비하는지, 어떤 인정 욕망 속에서 브랜드를 선택하는지 충분히 보여주지 않는다. 그렇다고 마케팅 과학의 시도를 단순히 폐기할 수는 없다. 과학화는 마케팅을 우연한 감각과 개인적 직관에만 의존하지 않도록 만들었다. 시장조사, 소비자 행동 분석, 성과 측정은 실제로 마케팅을 더 체계적으로 만들었다. 문제는 과학이 아니라, 과학이 인간 경험 전체를 대신할 수 있다는 믿음이다.
마케팅이 과학이 되려 했던 이유는 분명하다. 기업은 불확실성을 견디기 어렵다. 시장은 빠르게 변하고, 소비자는 쉽게 떠나며, 경쟁자는 계속 나타난다. 이런 세계에서 마케팅은 스스로를 정당화해야 했다. “우리는 감으로 움직이는 사람들이 아니라, 근거를 가지고 시장을 관리하는 사람들입니다.” 과학의 언어는 마케팅에게 조직 안의 권위와 합리성을 부여했다.
그러나 마케팅은 과학이 되려는 순간, 자신이 본래 다루던 것을 잊기 쉽다. 마케팅은 인간의 의미 세계를 다룬다. 욕망은 측정되지만, 동시에 해석된다. 브랜드는 관리되지만, 동시에 살아 있는 경험으로 체화된다. 광고는 정보를 전달하지만, 동시에 감정과 상징을 조직한다.
결론
마케팅은 과학이 되려고 했다. 그것은 우연한 선택이 아니었다. 불확실한 시장을 통제하고, 조직 안에서 정당성을 얻고, 소비자 행동을 예측하려는 근대적 욕망의 산물이었다. 하지만 마케팅이 완전히 과학이 될 수 없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마케팅의 대상은 사물이 아니라 인간이며, 인간은 단순히 반응하는 기계가 아니라 의미를 살아내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중요한 질문은 “마케팅은 과학인가, 예술인가”가 아니다. 더 근본적인 질문은 이것이다. 마케팅은 인간을 예측 가능한 대상으로만 볼 것인가, 아니면 의미를 구성하는 존재로 이해할 것인가?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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