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칼 구스타프 융이 겪었었던 환상체험과 경험이 융의 삶의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살펴본다. 이 체험기는 종교적 상징이 현상이 되는 심리를 알아보는 데 주요한 사례가 된다.
종교와 심리
Sogar der Protestantismus, der sich anscheinend einer fast unbegrenzten Befreiung von dogmatischer Tradition und von kodifiziertem Ritual ausgeliefert und sich damit in mehr als vierhundert Denominationen aufgesplittert hat sogar er ist daran gebunden, wenigstens christlich zu sein und sich innerhalb des Rahmens der Überzeugung auszudrücken, daß Gott sich in Christus, welcher für die Menschheit litt, geoffenbart habe. Dies ist ein bestimmter Rahmen mit bestimmten Inhalten, welche nicht verbunden oder erweitert werden können durch buddhistische oder islamische Ideen und Gefühle. Und doch ist es unzweifelhaft, daß nicht nur Buddha oder Mohammed oder Konfuzius oder Zarathustra religiöse Phänomene darstellen, sondern ebenso auch Mithras, Attis, Kybele, Mani, Hermes und viele exotische Religionen. Der Psychologe darf, wenn er eine wissenschaftliche Haltung ein nimmt, den Anspruch eines jeden Bekenntnisses, die einzige und ewige Wahrheit zu sein, nicht berücksichtigen. Er muß sein Augenmerk auf die menschliche Seite des religiösen Problems richten, da er sich mit der ursprünglichen religiösen Erfahrung befaßt, ganz abgesehen davon, was die Bekenntnisse daraus gemacht haben.
심지어는, 교리적 전통과 성문화된 의식으로부터 거의 무제한적 해방으로 인한 400개 이상의 교파로 나뉜 개신교조차도 기독교적이어야 하며, 하느님이 인류를 위해 고통받는 그리스도 안에서 계시되었다는 확신의 틀 안에서 표현되어야 합니다. 이건 특정한 내용과 함께 특정한 틀로 말해지기 때문에, 불교나 이슬람적 이념과 감정으로는 연결되거나 확장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부처나 모하메드나 공자나 조로아스터뿐만 아니라, 미트라, 아티스, 키벨레, 마니, 헤르메스 및 많은 이국적인 종교들의 현상들도 종교적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심리학자가 과학적 태도를 가지고 각 종교의 유일하고 영원한 진리라는 주장을 고려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 심리학자는 신앙이 만들어낸 것이 무엇이든 간에, 초기의 종교적 경험에 관여하는 인간적인 면면에 주목해야 합니다.
필자 역, Carl. G. Jung, Psychologie und Religion, Rascher Verlag, 1962. 13-4.
칼 융은 종교적, 신화적 상징이 집단 무의식에 존재하는 (근원적)원형의 표현이라고 믿었다. 이 원형은 개인보다는, 인류 일반에게 존재하는 집단 무의식(das kollektive Unbewußte)을 구성하는데, 이 근원적 원형은 지리적, 문화적, 인종적 차이와 관련 없이 존재하는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행동유형을 말하고, 이것이 바로 신화를 산출하는 그릇이자, 우리 마음 속의 종교적 원천이라고 한다.(2011. 84) 또한, 융은 심리를 개인의 마음에서 현상되는 사건으로 이해하고 심리학이란 그런 현상을 탐구하는 경험적 학문이라고 한다.(1962. 11)
위 인용문에서 칼 융은 종교적 경험과 신념 체계를 분석하고 있다. 융은 기독교만의 특수성이 있음을 말하면서도 세계 여러 종교들의 전통과 인물들에게서도 참된 종교적 경험을 대표한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 이러한 접근은 각 개개인마다의 개성을 바탕으로 이해하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칼 융의 체험
융의 삶은, 그가 고백했던 대로, 스스로를 실현시키려고 했던 무의식의 이야기였다. 특히 그는 1913년 프로이트와 결별한 다음 자신의 내면에서 그 전까지 자신의 삶을 지탱해 주었던 하나의 세계가 무너지고 새로운 세계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수많은 무의식의 이미지들을 체험하면서 그 자신은 물론 인간의 본성에 대해서 알게 되었고, 그것을 분석심리학 이론으로 정리하였던 것이다.
김성민, 『분석심리학과 기독교』, 학지사, 2012. 23.
김성민은 융의 무의식 체험 네 가지를 꼽는다.(2012. 26-32)
1) 남근에 관한 꿈
2) 신성 모독적인 환상과 하느님 체험
3) 프로이트와의 결별과 내면적인 체험
4) 무의식의 초월적 기능과 만다라, 그리고 연금술
바로 이와 같은 체험들로, 처음 두 가지는 융의 삶이 어떻게 되었는가를 관찰할 수 있다면, 뒤 두 가지의 체험은 분석심리학자로서 자기 자신을 확립하게 되는 모습을 볼 수 있다.(23)
남근에 관한 꿈
융이 세 살에서 네 살이 될 무렵, 꿈을 꾼 것인데, 그 꿈 속에서 정사각형 모양을 한 커다란 구멍 하나를 보았다. 그 속을 들여다보니, 그 구멍 밑바닥에는 녹색의 커튼이 쳐진 방 하나가 있었고 그 가운데 황금빛 보좌가 있었다. 그 보좌 위에는 거대한 물체가 있었는데 알고보니 거대한 남근(phallus)이었다. 그때 귓가에서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었고 그 내용은 “그래, 그걸 잘 봐 두어라, 그것은 사람을 잡아먹는 괴물이다.”라고 외치는 것 같았다.(26)
융은 나중에 이 꿈을 해석하며 남근은 무의식 속에 있는 힘이며, 지하 세계의 신이었다고 해석한다.(ibidem) 융이 처음으로 무의식과 접촉하는 와중에, 무의식의 깊이에서 중요한 무언가를 찾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황금빛 보좌와 남근은 성적 상징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 것으로서 신성성과 창조성을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융은 인간의 내면에는 그런 신적인 요소가 있다고 주장”(27)하는 것이다.
신성 모독적인 환상과 하느님 체험
융이 열두 살 무렵에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 옆이 바젤 성당이었는데, 그때 하늘은 몹시 화창하고, 성당 지붕은 햇살에 반짝이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보자마자 융은 아름다운 생각들이 스쳐감과 동시에 그 생각들을 더 이상 이어갈 수 없게 하는 환상이 떠올라 무서웠다고 한다. 이 환상은 신성 모독적인 것으로서 3일 동안 환상과 싸우느라 애를 썼었다. 그러다가 결국 그 환상 또한 천지만물을 주재하는 하느님의 것이라는 생각이 듦과 함께 환상이 이끄는 대로 나아가 보자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렇게 되니, 융의 눈앞에서는 하느님의 옥좌로부터 앞서 말한 성당 지붕 위에 똥 덩어리가 내려와서 지붕을과 교회 벽까지 무너트리는 것을 보았다.(27)
이러한 환상은 융의 심리와 종교 관념을 바꾸는 일련의 현상이다. 신성 모독적 환상이 상징하는 것은 기존 종교의 신성한 것과 세속적인 것, 고귀한 것과, 천박한 것 사이의 이분법을 무너트리는 것이다. 칼 융의 분석심리학이 결국 자기를 실현하는 것을 가리키는 것은 바로, 전일성(全一性, die Einheit und Ganzheit)으로 말해지는 대극(對極, Gegensatz)의 합일이다. 쉽게 말하자면, 반대되는 것들의 하나와 전체를 이루는 것이 바로 의식과 무의식의 일치와 합일을 가리킨다.(2005. 7-8) 3일 동안의 갈등은 융의 내면에서 종교적 권위와 개인적 경험 사이의 충돌과 고통을 가리키고 하느님의 주재함을 받아들인 것은 그것들을 통합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융은 이러한 경험을 통해 통합과 성장으로 보았던 것이다.
프로이트와의 결별과 내면적 체험
융은 1902,3년, 인간 정신 속에 있는 콤플렉스의 존재를 발견한다. 프로이트가 먼저 연구한 것을 알고 그에게 편지를 보낸 뒤 만났다. 융은 프로이트에게서 아버지의 상을 발견하고, 자신의 내면에 결핍되어 있는 아버지상을 보상받으려 했다. 융은 프로이트의 누미노제적인 실체가 바로 성性이라는 느낌을 받았고 융은 완전하게 수용하지는 않았다. 그러다가 1912년 융은 프로이트의 성욕론을 반대하는 『리비도의 변환과 상징』이라는 책을 출판하며 프로이트와 결별하게 된다.
프로이트와의 결별 이후 융에게는 정신적으로 위기가 찾아오게 되는데, 프로이트는 융에게 있어 동료나 선배 그 이상의 의미인 아버지이자 인도자였었기 때문이다. 융은 이후에 수많은 꿈과 환상, 비전을 보았고, 훗날 적극적 상상(active imagination)이라고 부르는 작업인, 자신의 무의식에서 떠오르는 상들을 그대로 재현해냈다. 이 작업을 통해 무의식이 가진 치유의 힘을 체험하게 되었고, 융은 이런 경험을 통해 사람들이 자신의 정동 상태에 빠트리는 사건 뒤에 숨은 이미지의 의미를 깨달을 때 치유의 힘을 얻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2012. 28-30)
무의식의 초월적 기능과 만다라, 그리고 연금술

1917년부터 융은 의미도 모르는 만다라를 그렸다. 만다라는 티베트 불교에서 승려들이 수행하는 과전 중에서 사용하는 원과 사각형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마법의 원이다. 융은 자신이나 다른 환자들의 꿈에서, 내면의 통합이 문제시되거나 이루어질 무렵, 만다라상이 많이 나타난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그 원인에 관해서 연구하였다. 융은 무의식은 이렇게 인간의 정신에서 발견되는 수많은 대극적인 요소들을 제3의 자리에서 통합하는 내적 요소가 있음을 알아내고, 우리 내면에서 두 가지 의지로 말해지는 의식과 무의식적 욕구 등이 맟설 때, 무의식에서 하나의 상징을 만들어 내면서 그 두 요소를 통합한다는 것이 그의 논문 「초월적인 기능」(1916)에서 발표가 되었다. 융은 또한 동양의 연금술에 관해 연구하다가 인간 육체에서 정신의 진수를 추출하려는 정신과학이라는 사실을, 물질적인 것들의 내면에 숨어 있는 통합의 배아를 찾아서 정신의 변환을 이루려는 영성 추구와 다르지 않다는 사실로서 받아들였다.(30-2)
[참고문헌]
- Carl. G. Jung, Psychologie und Religion, Rascher Verlag, 1962.
- 김성민, 『분석심리학과 기독교』, 학지사, 2012.
- 이부영, 『분석심리학』, 일조각, 2011.
- 이죽내, 『융 심리학과 동양사상』, 하나의학사,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