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고통은 ‘버림받음’이 주된 내용을 이루고 있다. 누군가를 잃거나 잃어버린 경험과 때로는 연상되는 고통은 콤플렉스가 된다. 그러나 이 콤플렉스는 자기실현을 이루는 단초가 된다.
콤플렉스
버림-포기 콤플렉스에는 ‘구함’과 ‘찾음’의 목적이 있다고 – 무의식에 내적인 조절자가 존재한다고 보는 분석심리학의 자기 가설은 구함과 찾음의 목적이 어디에서 나오는지를 뒷받침해주고 있다. 인간과 무의식의 창조성을 인정하는 심리학만이 인간의 고통 속에서 희망과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이부영, 『자기와 자기실현』, 한길사, 2022. 113.
Diese Tatsache hat mich dazu gedrängt, nicht mehr von Vater und Mutter direkt zu sprechen, sondern dafür den Terminus »Imago« von Vater und Mutter zu gebrauchen, indem es sich in solchen Phantasien nicht mehr eigentlich um Vater oder Mutter handelt, sondern bloß um deren subjektive und öfter gänzlich entstellte Imagines, die im Geiste des Kranken ein zwar schemenhaftes, aber ein flußreiches Dasein führen. Der Komplex der Elternimagines, d. h. die Summe der auf die Eltern sich beziehenden Vorstellungen stellt ein wichtiges Anwendungsgebiet der introvertierten Libido dar. Ich bemerke beiläufig, daß der Komplex an sich ein bloß schattenhaftes Dasein führt, insofern er nicht mit Libido erfüllt ist. Nach dem früheren Sprachgebrauch, der sich in meinen »Assoziationsstudien« herausgebildet hat, wurde als Komplex ein System von Vorstellungen bezeichnet, das bereits mit Libido besetzt und dadurch aktiviert war. Dieses System besteht aber auch als bloße Anwendungsmöglichkeit, auch wenn es vorübergehend oder dauernd nicht mit Libido besetzt ist.
이 사실로 인해 나는 더 이상 아버지와 어머니에 관해 직접적으로 말할 수가 없었고, 오히려 아버지와 어머니의 “상(Imago)”이라는 용어로 표현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그런 환상은 그 이상 실제로 아버지나 어머니의 대한 것이 아니라 단지 그들을 표현하는, 주관적이며 종종 완전하게 왜곡되어진 상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환자의 마음 속에 흐르는 존재로 그림자로 이끄는 것이다. 부모 신상의 콤플렉스는, 예를 들어, 부모와 관련된 생각의 총체는 내향적인 리비도가 적용하는 중요한 층위가 된다. 나는 리비도로 가득 차 있지 않은 한, 그저 그 자체가 그림자와 같은 존재로 이끈다는 점을 덧붙여 안용한다. 나의 “연상 연구”에서 발전된 초기 방법론에 의하면, 콤플렉스는 이미 리비도에 사로잡혀 활성화되는 관념 체계로 지칭되었다. 그러나 콤플렉스는 일식적으로 혹은 영구적으로도 리비도를 점유하지 않는 경우에도 근본적으로 존재한다.
필자 역, Carl Gustav Jung, Versuch Einer Darstellung der Psychoanalytischen Theorie, Rascher Verlag, 1955. 68-9.
콤플렉스는 감정적으로 강조된 사고와 기억의 일정한 군집(Gruppierungen)이다. 콤플렉스는 종종 고통스러운 경험과 이어지는데, 이러한 경험은 무의식 속에 억압된다. 고통스러운 경험은 무의식적으로 우리의 정동을 형성하는데, 이때 콤플렉스가 활성화가 되어 우리 개인이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반응하기도 한다. 때로는 자기 파괴적이기도 하여 자신에 대한 지나친 비난과 자해를 가할 수도 있는데 고통스러운 경험을 외부로 표현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이런 ‘고통’은 자기실현이라는 ‘희망’을 향하고 있다.
이부영은 고통의 종류는 여러가지가 있으나 대개는 ‘버림받음’으로 요약된다고 한다.(2022. 103.) 버림받음은 주관적으로 잃는 것이 되기도 하며, 실제적으로 버림 받아진 것 혹은 그에 준하는 상상 혹은 사건들을 일컫기도 한다.(ibidem) 수많은 신화에서는 고통받는 영웅이 나오고, 예수가 갈보리 언덕에서 “주여 나를 왜 버리시나이까?”라고 외쳤던 것이 상징하는 것은 콤플렉스와 관련된 고통을 치유하고 통합하는 시도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이 버림받음 고통이 의미하는 것은 최종적으로 구함과 찾음을 지향하고 있음을 말한다.(113) 다시 말해, 무의식의 층위에서 개인 스스로의 내면적 결핍을 극복하기 위해 내적인 동기와 조절자가 작동하는 것을 뜻한다. 이 내적인 조절자는 ‘자기’의 일부가 되어 자기실현을 위한, 자기의 전체성을 실현하려고 하는 근본적인 자기원형을 가리킨다.
따라서, 콤플렉스는 자기실현을 앞당기게 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위 칼 융의 인용문에서는 이마고(Imago)가 나온다. 부모에 대한 내면적 이미지로, 개인의 내면 세계를 구성하는 주요 요인이 되는 것이다. 이마고들은 개인의 무의식적 판타지와 감정에 깊은 영향을 주는데, 개인의 성격 발달과 대인 관계를 이루는데에 있어 영향을 미친다. 이것을 부모 이마고의 콤플렉스(Der Komplex der Elternimagines)라고 부른다. 이 부모 이마고의 콤플렉스를 과거에는 콤플렉스의 핵(Kernkomplex)으로 보여졌다고 칼 융은 말하는데, 부모의 영향은 신경증의 원인이 될 뿐만 아니라, 환자의 삶 전반에 걸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1955. 69-70) 그러나, 융이 볼때는 환자의 유아기 시절 부모와의 관계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 기인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왜냐하면, 신경증적 아이를 부모와 가정에서부터 분리시켜 잘 자라는 사례와, 부모와의 관계와 상관 없이 신경증 환자가 많다는 사실을 발견했기 때문이다.(72)
콤플렉스는 분명, “그림자와 같아서” 리비도가 주입될 때 활성화가 된다. 그러기 전까지는 잠재적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개인의 내면적 세계와 무의식의 패턴을 이해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참고문헌]
- Carl Gustav Jung, Versuch Einer Darstellung der Psychoanalytischen Theorie, Rascher Verlag, 1955.
- 이부영, 『자기와 자기실현』, 한길사,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