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팅의 철학 (5) | 소비 경험은 ‘의미’ 이전에 감각이다

우리는 공간을 이해하기 전에 이미 그 공간에 사로잡힌다

도입

어떤 공간은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부터 우리를 붙잡는다. 아직 메뉴를 읽지도 않았고, 제품의 가격을 확인하지도 않았으며, 그 브랜드가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생각하지도 않았는데 이상하게 오래 머물고 싶어진다. 반대로 어떤 공간에서는 특별히 불쾌한 이유를 찾지 못했는데도 몸이 먼저 출구를 향한다. 조명이 지나치게 밝았던 것인지, 사람 사이의 거리가 가까웠던 것인지, 음악의 박자가 불편했던 것인지 우리는 나중에야 이유를 붙인다.

마케팅은 이런 현상을 흔히 ‘공간 경험’, ‘브랜드 경험’, ‘매장 분위기’라는 언어로 설명해왔다. 조명, 향기, 음악, 색채, 동선 같은 환경적 자극이 소비자의 감정과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물론 틀린 설명은 아니다. 문제는 그 설명 속에서 경험이 너무 쉽게 ‘자극을 해석하는 소비자’의 문제로 환원된다는 데 있다. 마치 소비자가 공간에 들어가 환경 정보를 받아들이고, 그것을 해석한 다음,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태도를 형성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실제 경험은 그렇게 순차적으로 일어나지 않는다. 우리는 공간을 이해한 뒤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이미 움직이고 있고, 의미를 판단하기 전에 이미 긴장하거나 이완되어 있다. 그렇다면 소비 경험의 가장 첫 번째 층위는 의미가 아니라 감각에 있는 것은 아닐까.

세계는 생각보다 먼저 도착한다

메를로-퐁티는 『지각의 현상학』 서문에서 현상학이 되찾아야 할 세계를 “성찰 이전에 언제나 이미 거기에 있는” 세계라고 표현한다.

“le monde est toujours ‘déjà là’ avant la réflexion”
“세계는 성찰 이전에 언제나 이미 거기에 있다.”

Maurice Merleau-Ponty, Phénoménologie de la perception, Avant-propos, p. I.

이 문장이 중요한 이유는 우리가 세계와 관계 맺는 순서를 뒤집기 때문이다. 인간은 먼저 세계를 표상하고 그다음 그 표상에 따라 행동하는 존재가 아니다. 세계는 이미 우리 앞에 주어져 있고, 우리는 그 안에서 보고, 걷고, 만지고, 피하고, 다가간다. 성찰은 이러한 관계가 이루어진 뒤에야 시작된다.

소비 공간도 다르지 않다. 소비자는 매장의 조도가 몇 럭스인지 알지 못하면서 그곳을 ‘아늑하다’고 느끼고, 음악의 음압이나 템포를 분석하지 않으면서 걸음의 속도를 조정한다. 통로의 폭을 계산하지 않아도 몸은 다른 사람을 피해 움직이며, 진열대와 자신의 몸 사이에서 적절한 거리를 찾는다. 이 층위에서 경험은 아직 문장이 아니다. ‘고급스럽다’, ‘젊다’, ‘따뜻하다’ 같은 브랜드 의미가 만들어지기 전에 이미 몸과 공간 사이에서 어떤 관계가 형성되어 있다.

현상학에서 이를 설명하는 데 중요한 개념이 전반성적 경험(pre-reflective experience)이다. 전반성적이라는 말은 비이성적이거나 무의식적이라는 뜻이 아니다. 아직 경험이 명시적인 판단과 언어로 대상화되지 않았다는 뜻에 가깝다. 우리가 계단을 오르면서 발의 각도와 계단 높이를 계산하지 않는 것처럼, 익숙한 세계 속에서 몸은 매 순간 자신과 환경 사이의 관계를 명시적으로 사고하지 않아도 행동할 수 있다.

이 점을 소비 연구에 적용한 Stevens, Maclaran, Brown은 메를로-퐁티의 체화된 지각을 통해 공간에 대한 이해가 “pre-reflective”, 즉 전반성적이고 직관적인 방식으로 작동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여기서 지각과 행동은 서로 분리된 두 단계가 아니다. 몸은 공간을 지각하면서 동시에 그 안에서 움직인다.

분위기는 공간에 있는가, 우리 안에 있는가

이 지점에서 ‘분위기(atmosphere)’라는 개념도 다시 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흔히 분위기를 공간의 속성처럼 말한다. “이 카페는 분위기가 좋다”, “이 매장은 어둡고 몽환적인 분위기를 갖고 있다”고 표현한다. 그러나 분위기가 단순히 조명, 향기, 음악이라는 요소들의 합이라면 같은 공간에서 사람들이 서로 다른 감정을 느끼는 이유를 충분히 설명하기 어렵다.

하이데거의 처해있음(Befindlichkeit)과 기분(Stimmung)은 이 문제를 다르게 보게 한다. 하이데거에게 기분은 이미 존재하는 객관적 세계 위에 주관이 덧칠하는 감정이 아니다. 그는 『존재와 시간』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Die Stimmung hat je schon das In-der-Welt-sein als Ganzes erschlossen.”
“기분은 언제나 이미 세계-내-존재 전체를 열어 밝혀 놓고 있다.”

Martin Heidegger, Sein und Zeit, §29, p. 182.

기분이 세계를 ‘열어준다’는 표현은 중요하다. 우리는 먼저 중립적인 세계를 본 뒤 그것에 감정을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어떤 기분 속에서 세계를 만난다. 같은 골목이 어떤 날에는 친숙하게 느껴지고 어떤 날에는 낯설게 느껴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이데거는 기분이 내부에서 발생해 외부 사물에 투사되는 것도, 외부에서 침투해 들어오는 것도 아니라고 본다. 그것은 세계-내-존재라는 관계 자체에서 발생한다.

소비 공간의 분위기도 이 관점에서 보면 단순한 ‘환경 자극’이 아니다. 향은 소비자에게 전달되는 하나의 정보가 아니라 그 공간이 친밀하거나 낯설게 열리는 데 관여한다. 어둠은 단지 브랜드의 시각적 아이덴티티를 표현하지 않는다. 몸의 방향 감각과 이동 속도, 다른 사람과의 거리 감각을 바꾼다. 음악 역시 하나의 메시지라기보다 공간을 살아가는 리듬을 조직한다. 분위기는 공간에 독립적으로 들어 있는 것도, 소비자의 마음속에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몸과 공간이 만나는 관계에서 나타난다.

Hollister 매장은 왜 ‘읽는’ 공간이 아니라 ‘겪는’ 공간이었는가

이러한 논의를 소비 연구에서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Stevens, Maclaran, Brown의 Hollister 매장 연구다. 연구자들은 Hollister 매장 경험을 단순한 상징 해석이나 브랜드 이미지의 인지적 평가로 설명하지 않고, 소비자가 공간과 신체적으로 얽히는 과정으로 분석한다. 이들은 이를 Immersive Somascape Experience라고 명명하고, 감각 활성화(Sensory Activation), 브랜드 물질성(Brand Materialities), 신체적 관계성(Corporeal Relationality), 그리고 방향잡기와 방향상실((Dis)Orientation)의 네 요소가 소비자를 공간 안에 자리 잡게 하는 Consumer Emplacement로 이어질 수 있다고 설명한다. 연구가 강조하는 것은 정신과 표상의 우위가 아니라 몸과 물질성이 소비 경험을 구성한다는 점이다.

Hollister 사례가 흥미로운 것은 소비자의 말 속에 공간을 ‘해석했다’는 표현보다 몸이 끌리고, 위축되고, 방향을 잃고, 움직였다는 표현이 반복된다는 데 있다. 한 참여자는 매장으로 향하며 향수 냄새를 맡는 순간 “instantly enticed me”, 즉 즉각적으로 끌렸다고 묘사한다. 이어 어둠이 자신을 둘러싸고, 자신이 “dark cave”, 즉 어두운 동굴 안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느꼈다고 말한다. 또 다른 참여자는 매장이 자신을 붙잡기 시작해서 떨쳐낼 수 없었다고 표현한다. 연구자들은 이러한 반응을 단순한 수사적 표현으로 보지 않는다. 매장의 향기와 어둠, 장식물, 의류, 동선, 다른 사람의 몸은 소비자가 공간을 움직이는 방식 자체에 영향을 주고 있었다.

특히 방향상실에 대한 서술은 소비 경험을 ‘의미 해석’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이유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어두운 공간에 들어선 참여자들은 길을 찾고, 사람과 사물을 피하고, 계산대나 출구를 찾아가야 했다. 연구자들은 감각이 도전받을 때 환경이 인간과 비인간 사물 사이의 연속적인 협상으로 바뀐다고 설명한다. 여기에서 공간은 소비자가 바라보는 배경이 아니다. 소비자의 몸이 대응해야 하는 하나의 상황이 된다.

따라서 Hollister의 향을 단순히 ‘캘리포니아 라이프스타일을 상징하는 후각적 브랜딩’이라고만 해석하면 무엇인가 빠진다. 그것은 특정한 의미를 표현하는 동시에 소비자의 몸을 공간 안쪽으로 끌어당긴다. 어두운 조명 역시 신비로운 브랜드 이미지를 표상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소비자의 시야를 제한하고 움직임을 조심스럽게 만들며, 때로는 방향감각까지 흔든다. 장식과 의류는 브랜드 세계관의 기호인 동시에 몸이 피하고 돌아가며 통과해야 하는 물질이다. 브랜드는 여기서 읽히는 텍스트라기보다 통과해야 할 환경에 가까워진다.

생활세계는 객관적 공간보다 먼저 존재한다

연한 베이지색 배경에 'EDMUND HUSSERL DIE LEBENSWELT'와 Springer 출판사 로고가 인쇄된 책 표지.
Husserl, E. (2008). Die Lebenswelt: Auslegungen der vorgegebenen Welt und ihrer Konstitution. Texte aus dem Nachlass (1916–1937) (R. Sowa, Ed.). Husserliana: Edmund Husserl Gesammelte Werke, Band XXXIX. Dordrecht: Springer.

후설의 생활세계(Lebenswelt) 개념은 이러한 공간 경험을 한 단계 더 깊게 이해하게 한다. 후설에게 우리가 실제로 살아가는 세계는 과학적 측정과 객관화 이후에 생기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모든 객관화는 이미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계를 전제로 한다. 『생활세계』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적는다.

“Wir leben aber in einer praktischen Welt…”
“그러나 우리는 하나의 실천적 세계 안에서 살아간다.”

그리고 이어서 말한다.

“Aber alle miteinander Lebenden haben auch eine gemeinsame praktische Welt…”
“서로 함께 살아가는 모든 이들은 또한 하나의 공동의 실천적 세계를 갖는다.”

Edmund Husserl, Die Lebenswelt, Husserliana XXXIX, p. 388.

이 ‘실천적 세계’라는 표현은 소비 공간을 이해하는 데 중요하다. 소비자에게 매장은 180㎡의 면적, 300럭스의 조도, 80센티미터의 통로 폭으로 먼저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걸어야 하는 곳이고, 물건을 집어야 하는 곳이며, 다른 사람과 마주치는 곳이고, 때로는 머물거나 빨리 벗어나고 싶은 곳이다. 객관적인 공간 수치는 그 경험을 설명할 수 있지만 경험 자체를 대신하지는 못한다.

여기서 현상학이 마케팅에 던지는 질문은 분명해진다. 마케팅은 소비자의 경험을 측정할 수 있지만, 측정 가능한 요소만으로 경험을 다 이해했다고 말할 수 있는가. 향기의 선호도, 체류 시간, 이동 경로, 시선 데이터를 수집한다고 해서 그 공간이 소비자에게 어떻게 하나의 세계로 열렸는지까지 알 수 있는가.

브랜드는 의미로 기억되기 전에 몸에 자리 잡는다

전통적으로 브랜드 공간은 브랜드가 가진 의미를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매체로 이해되기 쉽다. 브랜드 정체성이 먼저 있고, 건축, 색채, 음악, 향기, 인테리어가 그것을 표현한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현상학적 관점에서는 이 순서를 뒤집어볼 수 있다. 브랜드가 먼저 의미로 존재하고 공간이 그 의미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공간을 몸으로 살아내는 과정에서 브랜드의 의미가 형성될 수도 있다.

Hollister 연구가 제안하는 Consumer Emplacement가 바로 이 지점을 보여준다. emplacement는 소비자가 단지 공간 안에 물리적으로 위치한다는 뜻이 아니다. 연구는 이를 몸-마음-환경이 감각적으로 서로 얽히는 경험으로 설명한다. 소비자가 향기를 맡고, 어둠에 적응하고, 다른 몸을 피해 걷고, 진열물을 만지며 공간의 흐름 속에 들어갈 때 브랜드는 하나의 추상적 이미지에서 살아 있는 환경으로 바뀐다.

그래서 어떤 브랜드는 이름이나 광고 문구보다 공간의 온도와 냄새, 빛의 밀도, 몸이 움직였던 방식으로 더 오래 기억될 수 있다. 소비자는 “이 브랜드는 자유롭다”라는 메시지를 명시적으로 이해하지 않았더라도, 그 공간에서 걸었던 방식과 감각적 긴장을 통해 이미 브랜드와 관계를 맺었을 수 있다.

마케팅이 소비 경험을 의미의 전달로만 이해하면 이 층위가 보이지 않는다. 공간은 의미를 담는 그릇이 아니라 의미가 발생하기 이전부터 몸을 배치하고, 움직이고, 정향시키는 조건이기 때문이다.

결론

우리는 브랜드를 생각하기 전에 이미 브랜드를 느끼고 있을 수 있다.

메를로-퐁티가 말했듯 세계는 성찰 이전에 이미 거기에 있다. 하이데거에게 우리는 중립적인 세계를 바라보는 관찰자가 아니라 언제나 어떤 기분 속에서 세계를 만나는 세계-내-존재다. 그리고 후설이 말하는 생활세계는 객관적인 측정 이전부터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실천의 세계다.

이 세 관점에서 소비 공간을 다시 보면 경험의 출발점도 달라진다. 소비자는 공간의 의미를 해석하는 정신만이 아니다. 그는 냄새를 맡고, 몸을 기울이고, 속도를 늦추고, 가까이 다가가거나 피하며 공간 안에서 살아가는 몸이다.

따라서 소비 경험의 첫 번째 질문은 “이 공간은 무엇을 의미하는가?”가 아닐지도 모른다. 더 근본적인 질문은 “이 공간에서 몸은 어떻게 존재하게 되는가?”일 수 있다.

브랜드가 진정으로 소비자의 경험 속에 들어오는 순간은 로고를 인식했을 때가 아니라, 어쩌면 아직 아무 의미도 말로 표현하지 못했지만 몸이 이미 그 공간에 적응하기 시작했을 때인지도 모른다.


참고문헌

  • Heidegger, M. (2018). Sein und Zeit. Gesamtausgabe, Band 2. 2. Auflage. Frankfurt am Main: Vittorio Klostermann. (Original work published 1927).
  • Husserl, E. (2008). Die Lebenswelt: Auslegungen der vorgegebenen Welt und ihrer Konstitution. Texte aus dem Nachlass (1916–1937) (R. Sowa, Ed.). Husserliana: Edmund Husserl Gesammelte Werke, Band XXXIX. Dordrecht: Springer.
  • Merleau-Ponty, M. (1976). Phénoménologie de la perception. Paris: Gallimard. (Original work published 1945).
  • Stevens, L., Maclaran, P., & Brown, S. (2019). An embodied approach to consumer experiences: The Hollister brandscape. European Journal of Marketing, 53(4), 806–828. https://doi.org/10.1108/EJM-09-2017-0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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