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심리학과 종교 (5); 분석심리학과 종교현상

[Abstract]

종교심성은 마음에서 현상된다. 이 종교현상은 칼 융에 의하면 자기실현을 이루는 것을 궁극적인 목표를 하는데, 종교적 의식이 상징하는 것은 아픔으로부터의 치유를 상징한다. 이번 글에서는 종교현상학의 일부와 분석심리학의 연결고리를 찾아 본다.

종교현상학

칼 구스타프 융(1875-1961)

Moreover, as much as the theist, the atheist can perfectly acknowledge the dimension of mystery inherent to our lives, and so be open to dimensions of the religious phenomenon. Mystery does not only amount to the “problematic” of the meaning of all human life; it is, instead, something stronger which seizes us and in which we are always already engaged. Gabriel Marcel famously distinguished between a mystery and a problem: “It seems, indeed,” he writes, “that between a problem and a mystery there is this essential difference: that a problem is something I encounter, that I find entirely displayed in front of me, and thus, that I can circumscribe and reduce while a mystery is something in which I am myself engaged, which is therefore conceivable only as a domain in which the distinction of the ‘in me’ and the ‘in front of me’ loses its meaning and its initial value.” It is thus far from certain that the attitude of the atheist can only be defined as a stepping backward in the face of mystery or as a rejection of mystery, as it is also at play in faith, and one could even propose to broaden the meaning of the “religious” in order to understand it otherwise than as the belonging to a religious community defined by dogmas or beliefs. As Thomas Mann suggests: “We live and die in mystery, and one can eventually call ‘religious’ the awareness that one has of this fact.

게다가, 유신론자 못지않게 무신론자도 우리 삶 속 내재된 신비 차원을 완전히 인정할 수 있기에, 종교 현상차원에는 열려 있을 수 있다. 신비는 모든 인간 삶의 의미에 대한 “문제성”에 해당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우리를 붙잡고 있는, 우리가 이미 언제나 참여하고 있는 더욱 강한 무언가이다. 가브리엘 마르셀(Gabriel Marcel)1은 신비와 문제를 구별하며 널리 알려진 말을 남겼다. “실제로 문제와 신비 사이에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문제는 내가 직면하는 어떤 것이고, 내가 완전히 눈앞에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신비는 나 자신이 참여하는 어떤 것이니, 내가 제한하며 약화시키면서 ‘내 안’과 ‘내 앞’의 구별이 가능한 영역으로만 생각될 수 있음에도, 그러한 구별은 그 의미와 처음의 가치를 잃을 뿐입니다.” 이로 인하여, 무신론자의 태도가 신비 앞에서 한 발 물러나는 것 또는 신앙에 작용하는 신비에 대한 거부로만 정의될 수 있다는 것은 확실하지 않다. 교리나 신념에 의해 정의된 종교 공동체에 속하는 것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이해하기 위해 “종교인”을 정의할 수 있을뿐이다. 토마스 만(Thomas Mann)이 말했듯이, “우리는 신비 속에서 살고 죽으며, 이 사실에 대한 인식을 결국 ‘종교적’이라고 부를 수 있다.”

필자 역, ed. Robyn Honer and Claude Romano, The Experience of Atheism: Phenomenology, Metaphysics and Religion, Bloomsbury Academic, 2021. 4.

‘종교현상’은 무신론자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종교현상은 세속화라 불리어지는 서양의 15세기 이후에 ‘무신론적’으로 뒤바뀐다. 이전까지의 사람들과 세속화 이후의 사람의 구분됨은 종교와 정치의 분리로 부터 시작된 종교적 신념과 종교적 시설과 성례 참여의 감소와 나누어지지 않는 관계를 가지고 있다.(2-3) 종교현상은 기독교적 예배 형식부터, 절 수행, 개인적 차원의 기도와 명상 등으로 나타나며, 결국은 신화적 상징도 이러한 종교현상의 일환이라 볼 수가 있다.
종교현상은 이렇듯 모든 인간 문화 속에 있기 때문에 완전하고도 구분되어진, 순수한 종교현상이라는 것은 없다.(2019. 4) 융의 분석심리학에서는 종교적 심성을 통해 인간에게 원형(archetypes)과 종교적 현상들의 구조를 살펴본다. 즉, 원형은 인류 공통의 경험과 심리적 반응을 기반으로 하는 내면적 이미지나 모티브로 인간의 생각과 행동 그리고 신념 체계에 영향을 미친다고 보았던 것이다. 곧, 이러한 종교적 상징을 통해 개개인의 자기실현을 목표로 했던 것이다.

심리와 종교

Man könnte sogar die religiöse Erfahrung definieren als diejenige Erfahrung, welche durch die höchste Wertschätzung charakterisiert ist, ganz abgesehen davon, was ihre Inhalte sind.

체험으로서의 종교적 경험으로 말해지는 그 무엇은 그 내용이 어떠한가 상관없이 전율을 특징으로 한다.

필자 역, Carl Gustav Jung, Psychologie und Religion, Rascher Berlag, Terry Lectures 1937. 76.

칼 융은 종교적 경험을 가장 높은 가치를 지닌 경험이라고 정의한다. 그 내용이 무엇이든 간에 그 경험의 특성에 집중하고자 하는 것이다. 융은 “교회 밖에 구원이 없다(extra ecdesiam nulla salus)”라는 선고 아래에서, 인간 영혼을 최후의 희망으로 삼는 것이 바로 현대 정신이다고 하는데,(ibidem.) 전통적 기독교의 구원관은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안에서만 구원이 가능하다고 하였다. 하지만 융은 이것을 문자적인 해석에서 벗어나 개인의 내면 세계와 무의식 내에 있는 신성성과 연결을 시킨 것이다.

콤플렉스

콤플렉스는 이전 글에서 무의식 속에 억압되어 있으나 고통과 함께 발현이 된다고 하였다. 콤플렉스는 개인의 과거 경험과 어린 시절의 상처와 갈등에서 유래되기 때문인데, 인간은 종교적 의식에서 보이듯 이런 고통에서부터 벗어나 치유되려는 상징과 이어진다. 종교적 경험은 때때로 자신의 콤플렉스를 의식화하여 인식하게 되며, 개인은 자신의 무의식적 갈등과 대면하여 의식 층위로 끌어 올리게 된다. 이러한 콤플렉스는 칼 융에 따르면, 특정 상황과 자극(Reizwort)에 대해 개인의 반응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다시 말해, 무의식 속 숨겨진 콤플렉스는 특정 자극에 의해 예기치 못한 고통으로도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18)

  1. 가브리엘 마르셀은 존재의 신비와 문제를 현상학적으로 풀이한 현상학자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Here I am)”가 연상되는 “내가 여기 있다.(I am here)”에 의미를 둔 마르셀은 인간 존재의 문제는 상호주관성에 의해서만 해결될 수 있다고 보았다. 이 문제는 또한 신비의 문제가 된다. 분명한 종교적 체험 곧, 하느님에 대한 신앙 체험은 개인과 개인의 만남으로서 상호주관적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따라서, 본인, 자아의 실존은 진정한 사랑과 희락으로 말해지는 신앙을 통해 가능하다고 하며 이를 초-현상학적이라고 한다. ↩︎

[참고문헌]

  • Carl Gustav Jung, Psychologie und Religion, Rascher Berlag, Terry Lectures 1937.
  • Robyn Honer and Claude Romano, editors, The Experience of Atheism: Phenomenology, Metaphysics and Religion, Bloomsbury Academic, 2021.
  • 최정화, 「신종교현상학(New Style Phenomenology of Religion)의 쟁점들. ‘지향성(intentionality)’과 ‘문제 중심의 종교현상학’」, 『종교와 문화』, 서울대학교 종교문제연구소, 36.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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