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설, 하이데거, 사르트르 그리고 메를로-퐁티
현상학적 운동은 현상학의 이념에서 출발한다. 에드문트 후설은 그의 후기 저작 『위기』에서 이를 인간 실존의 ‘위기’로 진단한다.1 현상학의 이념은 “사태 자체로!”라는 구호에서 드러나듯, 경험을 있는 그대로 기술하는 것을 목표로 하며, 이는 실존적 차원을 내포한다. 후설 당시의 학문적 분위기는 실증주의와 심리학주의의 영향으로 인해 인간 존재를 물리적 실체나 심리적 작용으로 환원시키려는 경향이 있었고, 철학은 이에 대한 답을 제시하지 못해 본래의 목적이 붕괴된 것으로 여겨졌다.2 철학이 인류의 정체성 탐구와 자기 목적성에 기반을 두고 작용할 수 있었던 점에서, 현상학적 운동은 이러한 이념이 생활세계와 상호작용하며 실현되는 과정으로 이해될 수 있다.
후설의 현상학은 내재적 영역과 외부 대상의 초월적 영역, 실제 사물과 이념적 본질의 구분을 통해 시작되며, 이는 신체의 입지를 애매하게 만든다. 후설과 달리, 메를로-퐁티는 주체-객체의 분리를 넘어 신체의 지향성3을 통해 세계 경험의 구조를 설명하고 있는데, 메를로-퐁티에게 현상학적 환원은 의사소통이 가능한 의미의 세계를 만드는 과정으로, 지각을 통해 신체와 세계 간의 상호작용을 해명하는 작업이다. 하이데거의 세계-내-존재 개념은 인간이 세계와 맺는 근본적 관계를 의미하며, 이는 현상학적 환원을 통해 신체가 지각하는 세계를 기술하는 데 중점을 두게 된다. 메를로-퐁티에 따르면, 현상학적 환원은 의사소통이 가능한 의미의 세계를 형성하는 과정이다. 이는 ‘폴’의 의식과 ‘피에르’의 의식으로 분리된 세계가 아니라, 의사소통이 가능하도록 선개인적 의식의 행위에 의해 만들어진다. 후설의 현상학적 환원에 의해 부여된 세계는 단지 의미의 세계일 뿐이다.(PHP. vi) 그러나 메를로-퐁티에게 의식의 행위는 지각이며, 지각은 열려 있는 세계로, 전체의 부분들(total parts)로 구성된다. 폴과 피에르의 의식은 지각을 통해 나타나며, 이는 서로 공유되는 존재 방식이자, 세계와의 관계를 해명하는 구체화 과정이다. 하이데거의 ‘세계-내-존재’ 개념은 단순히 인간이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와 맺는 근본적인 관계를 의미한다. 하이데거는 ‘세계 내(In der Welt)’와 ‘내 존재(In-Seins)’를 분석하면서, 현존재의 존재론적 구조와 세계성의 이념을 규정하고, 공간 내에서의 현존재의 존재양식을 밝혀낸다.4 메를로-퐁티는 후설의 현상학적 방법론과 하이데거의 존재론적 분석을 연결하려 시도하며, 하이데거의 ‘세계-내-존재’가 현상학적 환원의 기초 위에서만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즉, 후설과 하이데거의 사상을 계승한 현상학적 운동은 현상학의 이념이 어떻게 구체적인 구조들과 연결되며, 그 영향력이 어떻게 확장되는지를 보여준다. 후설의 현상학적 환원은 결국 생활세계에서 이념이 실현되는 것을 의미하며, 메를로-퐁티는 이를 의미가 부여된 세계로 해석한다. 그렇기에 메를로-퐁티가 하이데거를 해석하면서, 하이데거가 현상학을 존재론적으로 전환시킴으로써, 현상학적 환원이 ‘사물 자체로!’라는 구호에 따라 신체가 지각하는 세계를 기술하는 데 목표를 두고 있다고 주장한다.(PHP. ii-iii)

그러나 메를로-퐁티는 하이데거가 신체성에 대한 진지한 논의를 회피했다고 지적한다.5 메를로-퐁티의 현상학은 신체-주체로서 타자와 세계와의 상호작용을 중시하는 것에 반해, 하이데거는 내던져진(Geworfenheit) 존재, 거기에-존재(Da-sein) 등으로 인간 존재의 근본조건을 분석을 하며, 세계와의 관계-맺음으로 현존재의 근본처지만을 말했을뿐 그 관계-맺음에 있어 필연적인 신체를 논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이데거의 존재론적 전환은 현상학을 실존철학으로 발전시키는 데 중요한 기여를 했다. 메를로-퐁티는 현상학이 철학적 방법론을 넘어 하나의 운동으로 존재한다고 보았다. 이는 현상학이 실존철학과 연결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현상학이 인간 실존과 인식의 본질을 탐구하는 목표를 가진다면,6 생활세계라는 공간성을 가진 세계 내에서, 현상학적 장 속에서 주관과 객관의 나누어진 세계가 아니라 상호적으로 의존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가 있다. 이것이 메를로-퐁티의 지각의 현상학이 되는 것이다.
메를로-퐁티에 따르면, 사르트르는 하이데거의 세계-내-존재 개념을 비판적으로 계승하면서도 독자적인 견해를 제시한다. 사르트르는 하이데거가 현상학에서의 이념적 주체7를 넘어서려 했으나 완전히 극복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즉, 초월론적 주관에 의해 구성된 세계를 비판한 것이다. 슈피겔베르크는 사르트르가 하이데거의 공동존재(Mitsein)를 다루는 방식을 “급진적이고 약간은 야만적”이라고 평가하며, 하이데거가 인간 존재의 복잡성을 지나치게 단순화했다고 지적한다8. 사르트르는 하이데거의 현상학적 접근과 존재론적 질문에 큰 영향을 받았으나, 인간 존재의 자유와 주체성에 더 큰 비중을 두었다. 사르트르는 존재가 무에 의해 둘러싸여 있으며, 이 무가 세계의 한계를 나타내는 수단이라고 보았다. 이러한 사르트르의 주장에 따르면, 세계는 하이데거의 이해처럼 단지 지각과 감각에 의해 결정되지 않으며, 하이데거의 접근이 지각과 감각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본다. 이는 “하이데거의 해석학적 기술의 불충족성”이 현존재가 존재론적 존재일 뿐만 아니라 세계에 실질적 변화를 가져오는 존재임을 간과했기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9 사르트르는 하이데거의 이론이 인간의 근본적 자유와 관계 내에 있는 실존적 측면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았다고 보았다. 사르트르에게 자유는 타인에 대한 책임을 요구하는 실천적 교리가 되며, 인간은 단순히 세계에 내던져진 존재가 아니라 신체를 통해 타인을 발견하고, 주체 또한 타인의 시선에 의해 인식되는 존재이다. 이러한 인식은 순수 의식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 신체가 필요하다. 사르트르에게 신체는 개인의 주관적 경험을 구성하는 동시에 타인의 시선을 발견하고, 이를 통해 자아를 발견하게 된다. 신체를 가진 주체가 타인을 위한 존재(pour-autrui)가 되는 것은 타자의 신체에 의해 가능해진다. 따라서 이러한 신체는 자기 자신을 위한(pour-moi) 것일 뿐만 아니라 타인의 존재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대자와 타자의 존재 방식은 신체에 의해 상호 보완적인 관계(d’être sont complémentaires)가 된다.10
메를로-퐁티는 신체 문제에 있어 하이데거와 사르트르의 차이를 좁히려고 하는데, 신체는 세계-로의-존재(L’être-au-monde)의 근본 양식이 된다. 이 신체는 ‘살아있는 몸’으로서 단순히 외부 세계의 자극에 반응하는 존재가 아니라, 능동적으로 세계와 상호작용하는 주체로서 작용한다. 이 살아있는 신체는 뇌에 의해 움직이는 기계가 아니라, 감각과 의식이 통합된 하나의 통일체로서의 주체이다. 하이데거는 신체를 명확하게 다루지 않았으며, 사르트르의 신체-의식 개념은 여전히 이원론적 접근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 메를로-퐁티는 신체를 통해 세계 내에 존재함과 동시에 세계에 참여하는 주체로서 이 둘의 접근을 비판적으로 수용했다고 볼 수 있다.
- Edmund Husserl, Die Krisis der Europäischen Wissenschaften und die Transzendentale Phänomenologie(HUSS. 6), HAAG, Martinus Njhiff, 1976. p.10. 참조. ↩︎
- 이것은 철학의 고유한 목적의 무너짐, ‘붕괴된 텔로스(aufgebrochenen Telos)’로 말해지기까지 한다.(ibid. xix) ↩︎
- 현상학에서 말하는 ‘구체적 구조’란 주관의 경험을 구성하는 기본적이고 근본적인 요소들을 가리킨다. 즉, 지향성(intentionality), 생활세계(Lebenswelt), 시간성(Temporality), 신체성(Embodiment) 그리고 상호주관성(Intersubjectivity)으로 말해지는 요인들은 우리가 세계를 어떻게 경험하며 의식이 어떻게 그 경험들을 구성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패턴과 형식으로 나타낸다. (Zahavi D. 2003, pp.3-4, 17, 43, 110. 참조.) ↩︎
- Martin Heidegger, Sein und Zeit, Vittorio Klostermann, 1976/7., pp.71-3. 참조. ↩︎
- Louise Westling, “Heidegger and Merleau-ponty: Ecopoetics and the Problem of Humanism”, Culture, Creativitiy and Environment. Brill, 2007, p.235. 참조. ↩︎
- 서도식, 「공간의 현상학」, 『철학논총』, 제54집, 2008, p.341. 참조. ↩︎
- 사르트르가 말하는 이념화된 주체는 세계가 주체에게 회귀할 수밖에 없는 주관 곧, 순수자아를 이념적 주체라고 말한다. (이종훈, 『후설현상학으로 돌아가기』, 한길사, 2017, p.102. 참조.) ↩︎
- Herbert Spiegelberg, The Phenomenological Movement, Kluwer Academic Publishers, 1994, p.477. 참조. ↩︎
- 하이데거는 존재자 자체가 아닌 ‘존재’라는 문제를 중심으로 철학을 전개했다. 이를 위해 하이데거는 ‘해석학적 현상학’이라는 이름으로 인간의 경험과 존재양식을 생활세계 속 일상의 경험과 언어에 근거하여 존재를 분석하는 방법을 가리킨다. 다시 말해, 해석학적 기술은 세계-내-존재인 인간의 존재양식을 있는 그대로를 기술記述하는 것이다. 다음 연구를 참고할 것. (조형국, 「하이데거의 삶의 해석학 – 초기 하이데거의 현사실적 삶과 염려 분석을 바탕으로 -」, 2002.) ↩︎
- Jean-Paul. Sartre, op.cit. pp.455-8. 참조. ↩︎
[참고문헌]
일차문헌
- Edmund Husserl, Die Krisis der Europäischen Wissenschaften und die Transzendentale Phänomenologie(HUSS. 6), HAAG, Martinus Njhiff, 1976.
- Jean-Paul. Sartre, L’être et le néant, Èditions Gllimard, 1943.
- Martin Heidegger, Sein und Zeit, Vittorio Klostermann, 1976/7.
- Maurice Merleau-ponty, Phénoménologie de la perception, Éditions Gallimard, France.(약호 PHP). 1945.
이차문헌
- Herbert Spiegelberg, The Phenomenological Movement, Kluwer Academic Publishers, 1994.
- Louise Westling, “Heidegger and Merleau-ponty: Ecopoetics and the Problem of Humanism”, Culture, Creativitiy and Environment. Brill, 2007.
- Zahavi D., Husserl‘s Phenomenology, Stanford university press, 2003.
- 서도식, 「공간의 현상학」, 『철학논총』, 제54집, 2008.
- 이종훈, 『후설현상학으로 돌아가기』, 한길사, 2017
- 조형국, 「하이데거의 삶의 해석학 – 초기 하이데거의 현사실적 삶과 염려 분석을 바탕으로 -」, 『하이데거 연구』, 제19집, 2002.